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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과 순리의 미학

이가영

현대 한국인들은 누가 쫓아오는 듯 빨리하는 것에 현혹되어 이른바 ‘빨리빨리 민족’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삐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는 금방 망각하고 만다. 우리가 모르는 새에 소중한 순간마저 함께 흘려보내고 있다.


안종대 작가의 ‘Le temps (2018-2019)’는 여러 가지 색깔의 종이가 배열된 모습과 끓는 물에 단번에 홀치기 염색을 한 것 같은 얼룩과 무늬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실은 오랜 시간의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그는 회화전공 출신으로 프랑스에서의 첫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허무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던 중 무심코 캔버스를 짜려고 놔둔 천들을 마구 꾸기고 물을 뿌렸는데, 나중에 그 천들에서 생겨난 물 자국과 빛바랜 흔적, 얼룩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고 한다.



안종대, 實相 Le temps, 2018-2019, mixed media, 136x146cm


사소한 일상 속 자연 현상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염색한 천과 종이에 나뭇가지, 돌, 자기 조각, 쇠못이나 호일 따위를 올려두어 장시간 외부 환경에 노출 시켜 시간의 변화를 기록한다. 밖에 오랫동안 방치된 천과 종이는 햇빛, 비, 바람과 같은 자연 현상에 의해 얼룩이 지고 바래져 색을 잃고, 돌과 같은 오브제를 올려둔 자리는 그 모양대로 본연의 색을 유지하여 은은한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독특한 무늬의 흔적을 남긴다. 오랜 기다림으로 어떤 형태와 얼룩, 색감으로 변할지 알 수 없는 우연의 효과는 마치 실체는 사라지고 가물가물한 기억의 잔상만 남은 듯한 인상을 준다.



안종대, 實相 Le temps, 2018-2019, mixed media, 106x102cm


자연적인 풍화 과정을 거친 작업인 만큼 기다림의 시간도 길다. 작업 하나에 짧게는 몇 년, 대개는 수십 년에 걸쳐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자연에 드러난 부분과 오브제로 가려진 부분의 대비와 조화가 시선을 오래 머무르게 한다. 두 부분은 같은 존재이지만 시간이라는 개념의 영향으로 선명한 경계를 드러낸다. 



안종대, 實相 Le temps, 2009-2019, mixed media, 113x256cm


작가는 풍화된 작업에 오브제를 올리거나 점을 찍어 자연과 인간의 공존으로써의 예술에 대해 질문한다. ‘實相 Le temps (2009-2019)’는 덤덤한 먹 색감으로 인해 한국 고유의 정서가 담긴 수묵화가 느껴지기도 하고, 눈에 띄는 새까만 점과 흘러내리는 듯한 얼룩으로 광활한 우주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는 시간의 흐름이 남긴 흔적 속에 점이라는 사상을 넣어 과거와 미래를 하나로 귀결시킨다.


안종대는 종이일지라도 마치 생명처럼 하루하루 변해가고, 인간이 나이 먹어 연륜이 생기듯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 빛깔의 깊이가 깊어진다고 말한다. 즉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늙었다, 상했다가 아닌 아름다워지고 성숙해지고 순백이 되는 것이라 강조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드러내는 그의 작품처럼, 지나가는 시간과 변화에 대해서 크게 상심하지 말길 바란다. 그 대신, 지금도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의 파편들 속에서 잠시 뒤돌아 작고 소중한 의미를 찾아 기록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가영 neskick@naver.com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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